[청년기자의 눈]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 언어폭력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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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자의 눈]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 언어폭력 될 수도
  • 안예지
  • 승인 2020.06.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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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지 청년기자
▲안예지 청년기자

 “우리 모두 조심해야겠어요. 우리 동네 아줌마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 아무데도 안 나가고 집 안에서 밥만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일주일 지났는데 확찐자로 판명 났다네요.”

[한국청년신문=안예지 청년기자] 최근 인터넷과 SNS에서 ‘확찐자’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며 외부 활동이 감소하고 생활패턴이 불규칙해졌다. 이로 인해 체중 증가를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살이 확 쪘다는 의미를 반영한 ‘확찐자’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확찐자 이동 경로’라는 글에는 ‘'식탁→소파→냉장고→소파→식탁→침대→냉장고→침대’ 등이 적혀 있다. 또한 각종 언론사에서는 ‘확찐자 탈출’을 외치며 다이어트 방법을 소개한다. 코로나 여파가 빚은 생활의 변화는 비만에 대한 걱정을 야기했다.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신조어들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사람이 ‘코로나블루’를 겪고 있다. ‘코로나블루’는 우울을 뜻하는 ‘블루’에 ‘코로나19’를 합성한 단어를 말한다.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이를 유행시켰다. 국민 절반이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한다는 소식만으로 위로를 얻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는 안정감에서 ‘너도 그렇구나’하는 동정심을 유발한다. 이렇듯 신조어가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응원하게 했다.

또한 신조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마스크값이 오르며 금처럼 귀하다는 의미의 ‘금스크’, 집에 콕 박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집콕족’ 등의 표현도 등장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황을 꼬집어내는 유머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조어 유행 속에서 웃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비만 상태의 환자들이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질병의 위험률이 높은 비만 환자들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 또한 높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확찐자’라는 말을 쉽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확찐자’ 발언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다. 지난 3월 직장 내에서 공무원 A씨는 직원 B씨에게 ‘확찐자’라고 해 모욕 혐의로 고발당했다.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당사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흔히 접해왔던 표현으로는 ‘암걸린다’가 있다. 매우 고통스럽고 답답한 상황에서 ‘짜증난다, 미치겠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암환자 당사자 혹은 가족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단어이다.

질병뿐만 아니라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도 있다.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지 못하고 선택을 망설이는 상황을 빗대어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장애에 대한 결점을 부각해 장애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확찐자’라는 표현은 살이 쪄서 비만인 사람 모두를 낮잡아 부른다. 특정한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행위는 언어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에 절망하는 이들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8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확진자는 1만2000명에 이른다. 모든 국민이 오랜 시간 불안에 떨고 있는 만큼 ‘확찐자’라는 단어가 유머로 사용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누군가는 바이러스로 인해 가족을 떠나보내고, 누군가는 격리 상태에서 신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적 고통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신조어를 방패 삼아 이들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언어 사용을 규제할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신조어는 지양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익숙한 속담을 되뇌어 볼 때다. 우리가 생각 없이 뱉은 말이나, 장난으로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무분별한 언어 사용이 타인을 향한 폭력이 되지 않도록, 말을 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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