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눈] 청년문제, 청년정책, 청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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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자의 눈] 청년문제, 청년정책, 청년정치
  • 강현길
  • 승인 2020.07.1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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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뉴스와 정치권에서는 청년들이 왜 힘든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청년들이 힘들다'는 사실만 부각시키려고 한다. 결국 현실과 괴리된, '힘들어하는 청년'이라는 이미지만 남아버렸다. 미디어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청년들의 삶을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조각내어 보여준다. 그러니 청년 문제가 청년들에게 '나의 일'로 느껴질 리도, 현실감 있게 다가올 리도 없다." (『청년현재사』, 김창인 외 2인, 시대의창, 2019. 프롤로그 중에서.)
▲강현길 청년기자
▲강현길 청년기자

[한국청년신문=강현길 청년기자] '청년문제', '청년정책', '청년정치'와 같은 말들이 사회적 화두다. 청년들의 삶이 힘들기 때문에 청년들을 돕는 정책을 세워야 하고, 기성세대가 장악한 정치판에 청년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청년에 대한 성찰 없는 ‘청년’이란 구호는 실로 공허한 외침이다. 대다수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특정 세대나 나이대에 구속해 규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의 성별, 학력이나 계급, 거주 지역 등 더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이해관계로부터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이해관계와 규정된 정체성이 구성한 위치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가령, 강현길은 20대로서의 정체성,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으로 강현길을 이해하고 사회를 바라보기보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재학 중인 서울 거주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 나의 타고난 성별 혹은 사회가 규정한 역할, 학력, 노동의 계급, 출신 또는 거주 지역 등 여러 조건으로부터 일상 속에서 더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구성된 정체성은 청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전부터 늘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청년 문제 담론은 이러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체성과 그에 따른 문제의식을 쉽게 덮어버린다.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해서, 아이를 안 낳아서, 취업을 못 해서, 집을 못 구해서, 불행하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청년들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책이라는 것으로 각종 청년 정책을 쏟아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아주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과도기적 정책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제들은 청년이 청년이어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쌓아온 구조화된 병폐들에 의한 것이고, 따라서 단순히 청년들을 지원해주고 보조해주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어떤 사회 문제를 마주쳤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겪는 사람을 특정 계층이나 집단으로만 상정하고 이렇게 대상화된 피해자에게 시혜적 정책을 펼치려는 관점이 이제는 구태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문제’라고 부르는 것들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이 이해해볼 수 있다. 가령, 노동생산성이 그저 인력을 갈아 넣은 시간에 정비례한다고 믿는 구태적 경영관에 갇힌 기업문화는 그로부터 노동 착취 문제, 성별 간 임금 격차 문제, 취업난 문제 등을 유발한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라는 제도는 부동산 시장에 왜곡을 발생시키고, 부동산에 대한 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는 시장의 왜곡과 과열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범죄를 탈 일상적이고 악마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도 드러나는 사회의 근대적 젠더 인식은 구조화된 젠더 차별 문제의 거론을 차단하고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삶의 질의 상한선을 낮춤으로써 청년들은 삶의 여유를 잃고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역시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구태적이다. 수없이 다양하게 분화된 청년들의 삶은 이렇게 단편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하지만, 수없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일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청년들의 삶이라 해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 지방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겪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분명, 각각의 이유로부터 고통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디어와 일부 정치인들은 그러한 문제가 오로지 청년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인 것처럼 표현하고 '청년문제'를 정치적 재료로 소비한다. 그렇기에 '청년의 정치', '청년에 의한 정치', '청년을 위한 정치'와 같은 구호는 단지 알맹이 없는 외침인 것을 넘어 때로는 상당히 폭력적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기존의 다양한 사회적 병폐들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뿐인데, 이를 청년 문제라며 뭉뚱그리고 문제의식의 관점을 '청년'으로 돌릴 것을 강요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청년 문제 담론은 쓸모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년 담론이 쓸모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이해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청년이라고 하면 막연히 젊은이, 사회초년생, 새로운 세대 등으로 이해하곤 한다. 이같이 청년은 여성, 노동자, 지방거주자처럼 명확한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다. 통계청에서는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서는 15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청년의 정책적 정의는 법이나 규정에서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청년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청년의 정체성이 마냥 두루뭉술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살아있는 한, 모든 사람은 청년이 될 것이거나, 청년이거나, 청년이었다. 청년은 다른 정체성과 달리,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겪고 있고, 겪었던 시기다. 이 점에서 청년은 다른 모든 정체성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보편화 가능한 정체성이다. 

이처럼 청년이라는 정체성은 단지 그 사회의 새로운 생산활동 세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구성하는 정체성이다. 그렇기에 청년 문제는 대체로 그 사회가 쌓아온 각종 병폐를 새 세대가 종합적으로 경험하며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는 데서 기인한다. 지금 한국의 청년 세대는 젠더 갈등, 자본주의 체계 내 착취 문제, 도시와 지방 사이의 기반시설 격차 등 현존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병폐를 종합적으로 경험하는 세대다. 물론, 아동 문제,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또한 세대 중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노인 문제가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 문제고, 아동·청소년 문제는 보호와 교육에 주로 집중된 문제라면, 청년 문제는 한 사회의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미래가 지금으로부터 어떻게 지속 가능한가와 관련된 문제다. 그래서 청년 문제의 중요성은 다른 세대 문제와 구별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청년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병폐들을 최전선에서 겪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인 까닭에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점에서 우리는 청년 문제를 기존의 어떠한 사회 문제보다도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적 가치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청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금부터 미래까지 지속 가능한 가치, 곧 사회적 미래 가치를 재검토하고 반성하는 데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그러므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지 청년들을 새로운 사회적 약자로 대상화해서 청년들을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정책을 많이 만드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구태 가치에 대한 명백한 추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청년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고, 청년 정책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 대의이며, 청년 정치가 정치화해야 할 의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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