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미래 칼럼] 21세기라는 ‘멋진 신세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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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미래 칼럼] 21세기라는 ‘멋진 신세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
  • 임세림
  • 승인 2020.07.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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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림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임세림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고작 스물네 살인 내가 시간을 두고 이런 소회를 남기다니, 외람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청년들은 가파른 사회변화의 속도를 하루 멀다 하고 절감한다. 인터넷의 고도화, SNS의 상용화가 낳은 초연결사회는 뿌리 깊은 사회구조의 구석구석을 전격적으로 바꾸고 있으니 말이다. 이럴수록 일말의 퇴보 없는 기술의 진보가 구현하는 것이 진정 ‘유토피아’인지, 외려 ‘디스토피아’ 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우리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범유행한 코로나의 극복과정은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14세기 페스트를 상기시키며, 무엇보다도 관행이라는 핑계로 유구하게 이어져 온 어처구니없는 요소들이 드디어 문제화된다는 것은 전향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모든 행적은 기록이 된다. 이것이 촉발하는 디지털 감옥은 물리적 형태의 감옥보다 끈질기고 견고하다.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 소름 돋는 이유다.

아날로그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는 시점, 그 전보다 훨씬 더 큰 갈등의 불씨를 댕기는 논쟁이 있으니- 바로 표현의 자유’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의 의견 개진, 즉 ‘표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위해 가짜뉴스 처벌이라는 시의적인 사안을 불러와 보자. 가짜뉴스의 뿌리를 근절하기 위한 시도는 신뢰와 정확도가 제거된 온라인 무법지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그 공익적 목적과 다르게 여러 한계와 문제점에 봉착한다는 의견이 대두하는데, 첫째는 형평성 문제다. 가짜라는 것이 어떠한 근거 위에 판단될 수 있느냐-의 질문에서 출발하는 문제며 수많은 사건·사고로 점철된 역사는 그 해석에 따라 수많은 음모론을 일으켜왔다는 것을 주목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것이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에 우선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개인의 자유에 우선하는 것이 생긴다는 것은 여러 부차적 요소를 낳으며, 정부의 검열이 내재화되는 현상은 자유억압의 효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혐오표현은 또 어떠한가. 이것을 두고는 인권의 문제라기보다는 미추의 문제라고 일컫는 사람도,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는 첫걸음으로 작용한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나라인 미국을 예시로 차용하며,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인종차별이라는 분열의 골을 깊게 한다는 일각의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각각 ‘차별 금지법’과 결을 같이하는 일반법률과 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선언하고 있다. 개인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주되, 그것이 소수자의 인권유린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거시적 차원에서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집단과 개인 간의 혐오표현이 지니는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지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되, 국민의 ‘표현할 자유’는 보장해주는 움직임의 예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파른 갈등의 드라이브가 지속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의견이 정말 ‘내 의견’일지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군중심리와 동조현상은 꽤 강력하다. 실시간 검색어를 제공하는 엔진은 한 차례 게이트키핑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 포털에서의 추천 수 높은 댓글이 대다수의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각심. 그리고 정보사회의 알고리즘은 꽤 복잡한 방식으로 맺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경각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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