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평] 은은하고, 오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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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평] 은은하고, 오롯하게
  • 안효관
  • 승인 2020.10.0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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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관, 〈고장난 가로등〉, (디자인=안효관)
▲안효관, 〈고장난 가로등〉, (디자인=안효관)

[한국청년신문] 지난 9월 22일 추분을 넘겼고 이제는 낮보다 밤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추분은 24절기 중 하나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분기점이 되는 날을 말한다. 밤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가로등이 밤을 밝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요즘에는 가로등이 없는 거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좁은 골목길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가로등은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오랜 시간 어둠을 밝혀주는 그 특성 때문에 가로등은 문학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나 역시 가로등을 소재로 몇 편의 글을 적어본 적이 있다. 오늘은 가로등의 흔한 특성이 아닌 다른 면에 집중해서 써본 시를 소개하고자한다.

어느 날 가로등을 정면으로 응시했을 때 너무 눈이 부셔 바로 눈을 돌렸고 그 순간 색다른 시상이 찾아왔다. 길을 밝혀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눈을 맞춰 바라보기는 힘든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한동안 홀린듯이 눈을 맞출 수 있는 가로등을 찾아다녔다.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고장나서 희미하게 자신의 아래만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을 마주하게 됐다. 비록 고장났기에 길을 환하게 밝히진 못했지만 나만을 밝혀주고 위로해주는 듯한 그 가로등이 너무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밝혀주지만 눈을 마주할 수 없는 큰 존재를 동경하기보다는 한 사람과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고장난 가로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시를 풀어가며 설명하려 한다. 

 

"눈부신 태양의 빛을

차별없이 비춰주는 빛을

동경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의 글은 그 대상이 모호했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라기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글을 쓰곤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글은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기 힘들었고 이런 내용을 1연에 담았다.

 

"이내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

공허해졌고 허망해졌습니다"

 

너무 밝은 빛은 많은 사람을 비추지만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다. 너무 눈부시기에 마주할 수 없고 다가가기 힘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느꼈던 회의를 2연에 담았다.

 

"가로등의 그 빛조차도

눈이부셔

마주할 수 없었기에"

 

가로등은 태양보다 약한 빛을 내지만 그 빛도 마주하기에는 너무 밝다. 가까이에서 교감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은은한 빛이 필요한 것이다.

 

"눈을 맞출 수 있는

작은 빛을 주는

하나의 존재를 위한

빛이 되고자 합니다"

 

고장난 가로등을 바라보며 어쩌면 세상에 필요한 빛은 한 존재를 위한 여러 개의 작은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작지만 한 사람의 어둠을 밝히기 충분하고 눈을 맞출 수 있는 빛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은한 빛으로 조심스레 어둠을 밝혀주고 오랜 시간 곁에 머물고 싶은 빛과 같은 글을 써나가고 싶은 마음을 4연에 담았다.

▲안효관(시 쓰는 학생들)
▲안효관(시 쓰는 학생들)

문학작품은 그 대상이 분명할 때 큰 힘과 가치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위한 글이 결국 모든 이들에게 온전한 감정을 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기에 하나의 감정을 깊게 다룬 글은 그 감정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은은한 빛이 결국 밝은 빛보다 더 많은 사람을 비출 수 있는 것이다. 끝없는 밝음을 추구하기보다 편안함을 주며 가까이하고 싶은 빛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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