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12시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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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12시간이었나
  • 한지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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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지전'을 감상하고
▲한지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지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내래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 정윤의 대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죽고 죽이기에 전쟁의 실질적인 목적을 상실해버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휴전 직전까지 이 물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 군인들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고지전」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범으로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결정이 난 한국전쟁.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남한은 파죽지세로 북쪽까지 밀고 나아갔으나, 중공군의 가세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하던 시기가 있었다. 참담한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을 넘긴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정은 좀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이는 참전 병사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특히 남북의 경계선이라 불리는 ‘백마고지’에서 싸운 병사들은 조금이라도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단단히 목숨을 걸었다. 이 끝없는 전쟁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던 순간, 금일 오전 10시 휴전 체결이 협상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남북의 병사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죄 없는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오후 10시부터 휴전 효력이 발생한다는 소식이 잇따르며 남북의 병사들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12시간의 의미 없는 전쟁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살아서 집에 돌아가자던 그들의 눈물겨운 말은 마지막 전쟁으로 인해 끝내 지켜지지 못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다른 한국전쟁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다. 「고지전」은 이념이 폭발하여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하루를 다루고 있다기보다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직전과 직후, 즉 휴전 선언의 효력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과 직후의 상황을 담았다. 즉,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강렬한 시작에 묻혀버린 아픈 ‘결말’의 부분을 새롭게 다루었다. 다른 전쟁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력, 잔인함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섭게 맞서 싸우던 군인들의 가벼운 일상생활과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가장 큰 예시로 남북의 병사들이 ‘애록고지’를 뺏고 뺏기는 순간마다 전달했던 메시지가 있다. 고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들은 그곳에 술과 생필품, 편지 등을 넣어두었다. 북쪽의 병사가 북한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편지를 남쪽의 병사들은 정성스레 부쳐주기까지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과 농담을 주고받는 편지로 잠시나마 처참한 전쟁에서 벗어나 미소를 띠울 수 있었던 것이다. 휴전 선언이 알려진 직후, 개울가에서 씻고 있던 병사들과 마주쳐도 다짜고짜 총을 들어 죽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장면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혐오하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같이 살아남고자 했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는 없었다. 어린 병사 남성식이 부대에서 부르기 시작한 ‘전선야곡’은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마지막 전투 대기 상황에서 남북 구분 없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가족이 있는 각자의 고향으로 갈 수 있으나 이 전쟁이 자신의 마지막 운명임을 인지하고 눈물을 흘리는 남북 군인들의 가슴 아픈 모습, 물어뜯는 사냥개의 모습이 아닌 생존을 꿈꾸는 순수한 사람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서로 싸웠던 게 아니라 ‘전쟁’과 싸웠던 것이다.

남북의 군사들은 자신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참전하였다. 그저 윗사람들이 강제로 징집하여,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움에 떨며 싸웠다. 휴전이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12시간 동안 점령한 땅이 국가의 영토가 된다는 그 목적 하나만으로 같은 민족끼리 살벌한 전투를 벌였다. 수만 명의 남성식이 죽어나가는 동안 끝나지 않던 전쟁으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얻고자 했던 전쟁으로서의 해방과 가족들과의 재회를 놓친 그들의 아픈 청춘은 과연 누가 어루만져 주었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형이 아우를 죽이는 상황에서 과연 그들은 본인들이 밟고 있는 그 땅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수혁이 말한 것처럼 모두에게 지옥과도 같지 않았을까.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게 낫다는 생각과 휴전 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얽히고 얽혀 그들의 목을 조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짐과 동시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이 밀려온다.

휴전까지 남았던 시간은 고작 12시간. 현대인에게는 깊은 잠에서 깨어 평화롭게 점심을 먹으면 금방 채워질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그 당시 병사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을 시간이었다.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까맣게 변해버린 얼굴과는 다르게 떼 타지 않은 그들의 견고한 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하며, 조국을 위해 희생한 수만 명의 병사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들이 죽기 전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오늘부터 대신하여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끝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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