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정의의 사후에는 어떤 시대가 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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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정의의 사후에는 어떤 시대가 열릴 것인가
  • 홍수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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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명한 잠언이다. 인간인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은 동시에 근대 서양 철학을 구성하던 이성 중심 사고와 가치 설정의 종결을 선포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신을 믿지 않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짧은 인생을 반추해 보았을 때 주변에 종교를 가진 이들 역시 신을 믿는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태신앙이거나 부모님께서 종교계에 종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신의 존재 여부는 더 이상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 내면에 자리 잡은 신앙심의 깊이였다.

177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때는 천국의 성인들을 기리는 만성절 축일 날이었다. 지진으로 리스본의 대형 교회들이 파괴되고 미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하나의 국가가 독실한 신자였던 리스본이 만성절에 끔찍한 재앙을 겪게 된 일은 당시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흔든 큰 사건이 되었다.

처음부터 신을 믿었던 사람과 처음부터 신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믿었던 신을 믿지 않게 된 사람도 있다. 신앙을 버리는 일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믿음을 깨는 일에는 그 믿음보다 더 단단한 경도를 가진 사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뉴스를 보여준다. 뉴스에는 강자에 의해 짓밟히는 약자의 권리가, 잔혹한 범죄에 휩쓸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응당 이들을 구제해야 하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 모습까지 지켜보면서 이 모든 일에 분개한다. 분노 저편에 부정의에 대한 무기력이 건재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무기력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가련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은 초월적인 신적 힘으로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기인했다. 그들은 신이 있으면 정의롭지 못한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알린 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렸다. 철학의 뼈대였던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무너지고 새로운 터전이 생긴 것이다. 이분법적 논리 안에서 등한시되던 가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에서는 여성이, 이성과 감성의 구분에서는 감성이 조명되며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무시당하고 배제됐던 사람들의 다채로운 화음이 울려 퍼지는 세계였다.

정의의 죽음은 어떤 시대를 열 것인가.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고 말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는 부유한 자들은 살기 좋은 세상, 빈곤한 자들은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면서 평등과 거리가 먼 풍조를 그렸다. 차별과 혐오, 가난과 갈등을 마술 부리듯 사라지게 할 히어로는 영화 속에나 존재한다지만 나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엿본다.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국경을 넘어 약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어 주는 지구촌 시민들을 볼 때 나는 부정의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은 굳건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풀려나거나 젊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죄 없는 이에 대한 뉴스는 세상이 밉게만 보이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정의에 대한 분노와 같이 악에 의해 스러져 간 사람들을 가슴 속에 담고 그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무기력으로 탈바꿈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연대 의식은 약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전한 뒤 죽었다. 정의가 죽은 시대, 나의 종교는 인간은 신을 대신해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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