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인생은 퍼센트 게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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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인생은 퍼센트 게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 장하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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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과연 어찌 할 수 없는 100%의 확률로 흘러갈까?
▲ 장하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 장하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다들 그런 생각은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고단함이 잔뜩 눌어붙은 이불을 걷고 일어나기가 죽도록 싫은 날엔 하루 종일 누워 지내고 싶단 생각 말이다. 상상해 보아라, 창 밖에 선연한 햇살이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미칠 듯이 부드러운 감촉의 이불과 전날 밤 내가 꿈나라 여행을 할 때 방을 꽉꽉 들어 채우던 적당히 찬 공기의 이 완벽한 삼 박자가 이뤄내는 시너지로 행복 게이지가 마구 올라가는 순간을. 이런 날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와 한 몸으로 기생하고 싶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매일매일이 일어나기 싫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은 벌떡 일어날 수 있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아침에 내가 일어나기 싫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이유의 'Love poem' 앨범 소개 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나가기 싫은 자리에 억지로 나갔더니 오래 볼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을 마주쳤다. 인생은 참 잘 짜여진 장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고한 의지로 나가지 않겠음을 다짐했건만,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어깨 붙이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마주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내가 좋아하는 네가 들려주는 노래의 가사에 어느새 너를 대입하고, 혹시 너도 같은 마음일지 모르겠단 생각에 혼자 설레발을 치고, 마음이 헌신짝처럼 너덜거려도 그게 사랑인 줄 알고 멋대로 나자빠질 준비까지 돼 있는 나지만, 실은 너도 같은 마음일 확률은 0%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 확인하고, 쓰지 않는 전기 코드가 꽂혀 있진 않는지 확인한 뒤,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완벽하게 외출 준비를 끝냈다고 말이다. 그렇게 집 밖을 나서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마자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이상하리만큼 쾌적한 공기와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광활한 이 풍경. 그렇게 거울을 쳐다봤을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요즘 같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에서는 흔한 일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 번호 키를 누를 확률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길 가다 새똥을 맞을 확률은? 지하철에 탔는데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반대편에 앉아 있을 확률은? 추레한 차림으로 전 여자친구, 전 남자친구를 만날 확률은?

인생은 천편일률적인 확률로 ‘퍼센트 게임’임을 명시한다. 모든 것이 숫자로 정해지는 세상이라기보다 단지 내가 운이 없거나, 지나치게 운이 좋을 경우는 전부 ‘신의 농간’이라며 역설(力說)하는 입장도 배제할 수 없다. 그의 말이 맞을 확률은 그 누구도 셈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마의 확률로, 그 숫자로 정해지지 않는 자연적인 현상도 분명 존재한다. 이 외의 영역은 전부 퍼센트, 즉 숫자로 정해짐을 주장하는 바이다. 콘크리트 벽에서 한 떨기 꽃이 피어날 확률은 절대 높지 않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간단한 확률적 계산으로 셈이 가능하다. 콘크리트 벽의 작은 틈 사이로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아 싹을 틔울 확률과 그렇게 해서 잘 자란 새싹이 형형색색의 꽃잎을 꾸물거리며 피울 확률의 결합으로 콘크리트 벽에서도 꽃이 피어날 확률이 정해진다.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했지만 꽃을 피워낸 확률 역시, 부지불식간에 정해질 수도 있다. 또 밤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로또 당첨의 꿈을 헤아리다 잠든다 해도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이 말은 로또 당첨이라는 거룩한 꿈을 꾸는 누군가에겐 꽤 잔인하게 들릴 여지가 충분하다. 나는 내가 한 말이 그 누군가에게 비수로 꽂히지 않을 확률에 기대어 보겠다.

현실은 어찌 할 수 없는 확률의 연속이니 운명에 맡기라는 뜻이 아니다. 우린 ‘청년’이라는 이유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설계하고, 재고, 따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상처를 받는다. 진심 어린 걱정이라며 인생에 간섭하려 드는 천지간 모든 타인에 휘둘려 일찌감치 꿈을 접기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소리치며, 당신들의 편견에 쉽게 무너지지 않은 나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확률을 키우는 것이 어떨까?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경우와, 그 반대 경우의 확률 역시 자신이 바꿀 수 있다. 인생은 다른 누구도, 무엇도, 심지어는 신도 아닌 ‘나’에 의해 흘러간다. 실패할 만한 요소들을 쳐내고 내가 가는 이 길이 맞음을 되새기는 것, 단지 내 선택에 확신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주 사소한 행동조차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길을 걷다 새똥에 맞고, 그 상태로 뜨겁게 열애하다 아직 잊지 못한 전 여자친구, 혹은 전 남자친구를 마주쳤더라도 오늘은 그저 운이 좋을 확률이 낮은 하루였음이라고 위로하고 밤을 여는 노래를 들으며 일찍 잠을 청하는 것은 어떨까? 이 세상 모든 일은 그대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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