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우리가 남을 배려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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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우리가 남을 배려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
  • 홍수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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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가수 이소라의 노래 <Track 9>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살아가다 보면 간혹 생의 한복판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최악의 경우는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은 삶을 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울 때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김상용 시인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말을 남겼다. 삶의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말고 그저 웃어넘기라는 말에는 소탈하고 건강한 인생관이 묻어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폭풍이 부는 사막에 왜 던져졌나 한탄하는 일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왜 살아야 하나.’ 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일은 존재 이유에 대해 논하는 일보다 유익할 것이다.

과한 고민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상념에 젖어 들게 하지만 적당한 고민은 삶을 돌보고 자기반성을 통한 도약의 기회를 마련한다. 간혹 우리는 주변에서 “어떻게 사냐건 웃지요”를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깊은 고민 없이 웃으며 살고 싶다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남 신경 쓸 것 없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삶은 필히 강자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얽히고설킨 사회 관계 속에서 한가지 역할만 수행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가정에서 강자였던 사람이 일터에 나가면 약자인 경우가 있고 일터에서 강자였던 사람이 해외로 나가면 약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의도치 않은 일상 속에서도 타인의 삶에 비해 강자로 거듭날 때가 있다. 친환경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 중 무엇을 살까 고민할 때 우리는 지구온난화로 나라가 침수될 위기에 처한 국민들보다 더 나은 자리에 있다. 초콜릿을 살 때도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것인가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아동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 앞의 노인 분께 자리를 양보할까 말까 고민의 수렁에 빠지는 순간이 우리가 노약자보다 강자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강자는 약자보다 선택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다양한 선택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고 보았을 때, 아무런 고민 없이 결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그저 웃으며 산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다.

맹자는 인간의 소양으로 측은지심을 예로 들었다. 인간은 우물에 매달린 아이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나 살기 바쁜 시대에 우물에 매달린 아이까지 동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나만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은 각박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를 갖춘 사람들이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급급한 세상에 타인의 존재까지 고려하려면 공감과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화가 프리다 칼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 같은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략)… 난 그녀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녀도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라 상상하곤 한다.” 고정불변하는 관계는 없다. 유동적인 힘의 관계 속에서 강자였던 사람은 약자가 되고 약자였던 사람은 강자가 되기도 한다. 프리다 칼로의 말마따나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이어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와 타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언제든지 강자나 약자로 전환될 운명을 가진 동일체다. 왜 우리 모두 남을 신경 써서 살아야 하냐는 물음에 나는 그 타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민하지 않고 사는 삶은 행복하다. 그러나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내가 약자에 위치했을 때 타인 또한 나를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삶은 나와 타인을 하나로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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