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양자택일 극단적인 '밸런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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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양자택일 극단적인 '밸런스 게임'
  • 장하늘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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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인가?
▲ 장하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 장하늘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인가? 오늘날엔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 많은 돈이 있어도 그 돈으로 시간은 사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도 돈으로 산다. 2014년, 월가의 투자의 귀재인 버핏과 점심을 함께할 기회가 217만 달러, 한화 약 27억으로 낙찰됐다. 우리는 돈으로 워런 버핏의 시간을 산 것이다. 시간 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다. 또한, 우리는 돈으로 우리의 의무를 사고팔 수 있다. 조선 시대 때는 관직에 있으면 군역이 면제된다는 이유로 공명첩을 샀고, 조선 후기 신분제가 동요하자 중인들은 돈을 주고 양반 신분을 샀다.

감염자의 비말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는 무시무시한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자 우리는 병원에 격리 병동을 구축해 외부로 격리실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했다. 격리 병동 외부가 내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청정하다고 단정 짓긴 힘들겠지만, 격리실 내부의 공기가 외부의 공기와 순환되지 못하게 하여 사태가 불길처럼 번지지 않게 조치했다. 이 조치에는 ‘자본’이 불가피하게 들어갔다. 깨끗한 공기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주장의 확실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밸런스 게임이란 일정한 시간 내에 균형 있게 설정한 말도 안 되는 두 개의 선택지 중에 무조건 택일해야 하는 게임을 일컬어 명명한다. 재미로 시작해 전염병처럼 퍼진 이 게임은 사실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상상하기에 고통스러운 두 개의 상황 중에서 굳이 하나의 상황을 골라야 하는 이 게임은 ‘전제를 변형할 수 없다’라는 한 가지의 조건이 더 붙는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벤치에서 울고 1000만 원 받기 vs 나만 있는 벤츠 안에서 울고 돈 안 받기’라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전자를 선택하는 이의 비율이 더 높게 측정될 것이다.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그나마 행복할까?’라는 명제를 집어넣어 사고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은 우리의 자존심, 그리고 행복과 깊은 관련성을 보여 준다. 쪽팔림을 무릅쓰고라도 사람들의 앞에서 울고 1000만 원을 받아가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임을, 행복을 위한 선택임을 스스로 결정한다. 돈이 전부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돈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스스로의 행복에도 재화의 가치를 매긴다는 ‘자본주의’의 원리가 우리 사회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오는 이상,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또한 모든 그것이 허용된다면 반드시 행복할 것이다.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뼈아픈 불평등을 논하고, 암담한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 시스템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좀먹다 못해 파괴하며 소멸한다. 자본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적 동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불평등’이란 장애물에 발에 걸려 풀이 죽어 쓰러진다. 우리가 돈으로부터 ‘평등’하다는 인식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 반대역 또한 성립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봐야 할 시점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인가?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을 살 수 없으니, 결국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말했듯,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그리고 많은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우리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으면 행복하다고 느낀다.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이 없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이 순탄히 풀린다면 우리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성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돈이 많으면 우리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선택의 폭 또한 상당히 넓어진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경제적 불평등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을 극단적인 파멸의 기로로 몰고 간다.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 낙담하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나는 왜 돈이 없을까?’라며 자기 비하를 하기보다 나의 다음 세대, 나의 자녀들에게는 ‘나’와 같은 상황이 대물림되지 않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돈이 행복의 가치를 매기지 않는 공정한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진정한 ‘행복’을 고취하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나 안정적인 어른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학벌과 교육 성취 정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에 지극한 영향을 끼친다. ‘돈’은 우리의 생활, 행복, 자존심이다. 돈과 기회는 어쩌면 수직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순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경험과 교육의 기회가 많아지고, 행복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돈’이라는 뿌리로부터 뻗어 나가는 생각의 가지들이 ‘좌절’에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을 살 수 없으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반대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돈에 대한 갈망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분비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이 행복하지 못할 이유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돈이 없어 모든 것을 살 수 없더라도 행복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밸런스 게임 그 자체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크게 두 가지의 물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장 행복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그때그때 즐기면서 살 것인가, 보장된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내일의 행복을 모레로 계류하며 살 것인가?’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우리의 행복을 멋대로 정의하게 둘 것인지 아닌지는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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