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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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 홍수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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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며칠 전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가 추워진 날씨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달력을 보다가 벌써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두 번 충격을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의 두꺼워진 옷차림이나 호빵 찜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구세군의 빨간 냄비를 보며 연휴를 실감했을 텐데 올해에는 바깥 풍경이 어떤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외출도 부재한 탓에 나는 한 해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사회적 고립을 실천한 건 아닌가 생활 반경을 돌아보았다. 성찰은 곧 가정으로 이어졌는데 2020년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나는 대학 캠퍼스와 강의실을 전전하고 전시회나 맛있는 식당을 순방하며 다녔겠구나 생각했다. 2020년, 나와 함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그 우연성이 20대에 새롭게 시작될 인생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 건지도 몰랐다. 스무 살은 지나온 10대의 종막이기도 했고 성인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갈 출발점이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은 학생이었던 지난날의 모습을 지워버릴 준비가 만반이었고 그 태세는 나비로 변태하려는 애벌레의 노력과 흡사했다.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택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의 일환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고 한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성인의 독서 장애 요인 1위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이라는 결과를 대조하면 유의미한 현상이다. 나 역시 코로나19가 기승인 상황에서 삶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한정된 생활 중 하나가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며 시국의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고 시간 가는 것도 모른 채 이야기에 푹 빠지는 일 역시 값진 일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으로 대개 이런 이유들이 나열된다. 첫 번째는 책이 지식의 보고라서 두 번째는 국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돼서 세 번째는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들은 책의 쓸모에 초점을 맞춘 이유들로 학교 다닐 때 교과서 지문이나 설교로 듣던 내용이다. 강유원 저자는 책과 세계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재치있게 말하고 있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당면한 이들이 책을 읽는 심리는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그 혼란이나 방황을 해결해 줄 단서가 책 속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처지에 직면한 가상 인물을 보며 위로를 받고 또 그 인물은 어떻게 시련을 타파하는지 관찰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삶이 달라졌냐 물으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사적인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고 종종 좌절을 맛본다. 다만 독서는 좌절을 영구적으로 방지해 주지 않는 대신 좌절에서 빠져나오는 기지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책의 쓸모를 이야기하지만 책은 결함을 순식간에 고쳐주는 도구가 아니다. 책의 성질은 조언과 비슷하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지만 조언은 훗날 고난을 직면한 사람의 기억 속에 다시 떠오르고 그가 지혜롭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독서는 지금 내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다가올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예습하는 일과 같다. 책의 진가는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밝혀진다. 그래서 독서에는 인내심이 요구되며 미래에 대한 믿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 생활이 물거품이 돼버린 일에 대해서는 탄식했지만 기대가 허물어진 곳은 또 다른 하루하루로 채워졌다. 소중한 기회도 만났고 잊지 못할 경험도 했었다. 2020년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해인지는 아마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비가 탄생한 해가 아니라 나무에 나이테가 새겨지는 것처럼 2020년은 내 삶에 남을 것이다. 조난자가 나무 밑동의 나이테를 보고 태양이 뜨는 방향을 알듯이 언젠가는 이 힘들었던 해가 조언을 줄 수 있는 삶의 한 페이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2020년의 진가를 미래의 나에게 유보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난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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