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전태일 열사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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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전태일 열사와 청년
  • 김현상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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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 개선의 시대
▲김현상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김현상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중학교 때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어 보았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전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남기고 시대의 불꽃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하루하루 벌어서 자신보다 경제사정이 나쁜 여공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봉제공장 재단사로 열심히 일을 하던 그 시대에 평범한 청년이었다. 처음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의 직업은 시다였고 하루 일당이 50원이었으며 그것은 다방 차 한 잔 값에 불과했다. 지금으로 치면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츰 일을 빨리 배웠던 전태일 열사는 미싱 보조를 거쳐 재단사로 직급이 높아졌다 월급도 3천 원으로 높아졌고 경제 사정이 차츰 나아졌다. 이러한 전태일 열사에게 지금의 청년이 묻는다면 왜 무리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봉제공장 공장주들에게 찍혀가면서까지 그러한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당시의 한국의 노동시간과 노동자에 대한 인권이 사실상 무시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는 빠르게 직급이 높아졌지만 돈을 벌기 위해 지방에서 온 여공 시다들은 잠이 안 오는 약을 먹고 일을 하거나 다쳐서 병원을 가도 돈이 없거나 벌어도 고향에 돈을 보내 밥을 굶는 열약한 노동 환경이었다. 하루 70원 일당에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것은 공장주들의 착취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었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조합인 '바보회'를 결성하는 등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렇게 노력하던 전태일 열사 앞에 시대의 벽이 가로막혀 방해하였고 자신이 희생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다. 그의 나이 향년 22세에 뜨거운 고통 앞에서 분신하였다.

그의 죽음은 오늘날 일요일이 공휴일이 되는 제도가 만들어져고 많은 사람들이 노동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의미 없는 희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청년의 노동인권을 완전히 개선해다고 보기에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청년들이 노동을 하다 다치고 있으며 정당한 월급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시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나 또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11월 12일 고(故)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한 것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저 훈장의 가치만큼 청년의 노동인권 또한 완전히 개선되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길 바란다고 말이다. 전태일 열사 또한 이 시대의 청년들의 삶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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