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피도 살도 안되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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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피도 살도 안되는 경험
  • 유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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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방황 끝에서야 지름길을 찾을 수 있었다.
▲유진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유진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지만 의무가 주어지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관심도 없는 자유론에 관한 책을 읽고 에세이를 써야 한다든지 말이다.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이렇다 할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가능한 지식을 전부 끌어모아 꾸역꾸역 소화해 나갔다. 그러고 나서 보니 꽤 괜찮은 글이었다. 그간 쏟아지는 피드백을 수용해내며 하나의 글에 약 2주를 온전히 몰아붙인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러나 뿌듯함과 후련함도 잠시, 그 글은 이내 기억 속에서 잊혔고 나는 다시 자유론이나 사회심리학적인 글 따위에는 조예가 없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 글을 다시 꺼내보게 된 것은 반년하고도 더 지난 후였다. 작문에 재미가 들리기 시작한 게 이 즈음이었을까. 이런저런 글들을 끼적이다 보니 문득, 반년 전 주워들었던 기법들을 감질나게 활용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시절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경험은 짓궂은 교사처럼 어떤 것을 가르쳐주기도 전에 시험부터 치르게 한다'고도 말한다.

이처럼 ‘도대체 어디에 써먹을까, 대충 해도 되는 일에 괜히 시간을 투자했나’ 생각했던 일이 내가 필요할 때 불쑥 나타나주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를 귀찮게 했던 것들이 후에는 훌륭한 도구로 갈고닦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무의식 속에 흘려보낸 경험의 조각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물론, 이 시간마저 아깝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피든 살이든 뭐라도 된다면, 그러면 참 좋겠다.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고 자각하지 못할 때조차 경험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세상에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되는 시간은 없다.

오늘도 글쓰기에 문외한이던 누군가가 버젓이 칼럼을 작성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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