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작가] 내면적이고 비의적이며 우화적인 독특한 색채의 시인,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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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작가] 내면적이고 비의적이며 우화적인 독특한 색채의 시인, 기형도
  • 김다인
  • 승인 2021.01.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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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한국청년신문]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은 1960년 경기도 웅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으며, 학창 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서 근무했다.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그의 대표작에는 ‘빈집’이 있다.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상실에는 유예기간이 있다. 상실을 겪는 이들은 부정하고, 분노하고, 목 놓아 울부짖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쳐 다소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상실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끝났고,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며 소중했던 과거의 추억을 천천히 갈무리하여 정리하기 시작한다. ‘빈집’은 마음을 정리하는 이의 마음을 그려낸 시이다.

‘짧았던 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는 흰 종이’는 하나의 동일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어둠이 깊어가는 겨울밤, 좁은 책상에 흰 종이와 펜 하나를 올려놓고 사색에 잠긴 화자. 흔히 사랑의 대상은 연인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시의 분위기로 미루어보았을 때 화자의 사랑의 대상은 ‘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시나 소설과 같은 창작물이든, 신문에 실리는 기사나 사설이든 간에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 ‘망설임을 대신하는 눈물’과 같은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창작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다. 그러나 글만큼 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반영하는 예술은 없을 것이다. 언어만큼 정교하고 정확한 표현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고독하고, 힘이 쓰이며, 그렇기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것은 오직 열망 때문이다. 내 안의 무언가를 가장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 한때 화자의 전부였을 그 열망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

화자는 글을 쓸 때면 늘 짧았던 밤, 영감을 주던 겨울 안개, 아무것도 모른 채 천연덕스럽게 빛나던 촛불 같은 것들부터 차례차례 빈집에 넣는다. 이윽고 흰 종이와 고뇌하며 흘렸던 눈물, 마침내는 작가로서의 생명인 열망까지 넣어버린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빈집에 가두어 둘 뿐이다. 뚝뚝 떨어지는 미련으로부터 그의 사랑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빈집에 밀어 넣고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읊조리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기형도 시인의 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는 죽음, 두려움, 슬픔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우회하지 않는다. 보기 좋게 포장하지도 않고, 있어 보이기 위해 승화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고, 직시한 그대로를 써 내려갈 뿐이다. 그렇게 써 내려간 그의 시에는 사회와 삶의 근본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시인이 겪었던 유년의 가난과도 닿아있다.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문학위원 기영균)
▲금주의 작가 '기형도 시인' (디자인=기영균 문학위원)
김다인(시 쓰는 학생들)
▲김다인(시 쓰는 학생들)

가장 큰 위로는 막연한 공감의 말과 눈물이 아닌 ‘정확하게 이해받는다는 느낌’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고독하다고 느낄 때는 단순히 혼자 있을 때가 아닌,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소통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모두가 치열하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는 빈번하다. 그 부재를 메꾸어 주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는 부풀리거나 꾸미지 않은 언어로 삶의 비극을 묘사한다. 기형도 시의 ‘미학적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듣기 좋은 위로와 속이 텅 빈 눈물에 진저리가 난 이들에게 무채색의 감정을 노래하는 시인, 기형도의 시를 읽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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