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손주은과 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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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손주은과 존 리
  • 최원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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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최원석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마침내 그날이 왔다. 코스피 3000. ‘박스피’라고 불렸던 2010년대와 작년 코로나 사태 직후를 생각한다면 격세지감이다. 코스피 지수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다. 일부는 버블을 우려하며 조정이 필수적일 것으로 전망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한국의 기업과 산업이 발전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런데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주식시장의 질적 변화이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다. 기관과 외국인에게 ‘털리던’ 때와 달리, 작년 개인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동학개미운동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지난해 개인은 전체 주식거래대금의 75%를 차지할 만큼 거대했으며, 예탁금은 2019년의 두 배를 넘는 60조였다. 특기할 점은 2030세대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작년 4월부터 코스피가 끝을 모르고 오르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종잣돈이 없는 20대는 대출한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기도 했다. 20대의 ‘영끌’은 작년 여러 언론에서 다루었던 만큼 위험한 현상이다. 다행히도 아직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본격 조정과 하락이 시작된다면 그들이 끌어모은 영혼은 어떻게 될까. 현 20대, 90년대생의 영혼을 걱정하며 그들의 배경을 되돌아본다.

■ 손주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헛된 믿음

태초에 손주은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현 메가스터디 대표이사로써, 대한민국 사교육계의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인물이다. 잘나가는 대치동 사회탐구 강사였던 그는 2000년에 메가스터디를 창업한다. 사교육업계에서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으니, 최초로 기업형 학원을 세웠다고 볼 수 있겠다. 90년대생들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00년대는 사교육 줄이기가 주요 교육 정책이었을 만큼, 거의 모든 학생이 사교육에 의존했다. 하루에 3~4개 학원을 다니는 학생도 허다했다. 어느 학원을 가던 듣는 말은 비슷하다. 선행이 중요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최대 미덕이었다. “내가 자는 동안 적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따위의 말 역시 유행했다.

90년대생의 시대정신이 공정이나 정의라는 말이 항간에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90년대생을 더 정확히 표현하는 말은 ‘노력주의’이다. 능력주의도 아닌 노력주의.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었던 만큼,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헛되고 잘못된 믿음이다. 유튜브에서 “손주은 쓴소리”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험생들에게 ‘정신교육’ 하는 내용이다. 조회수는 160만 회를 상회한다. 그는 영상에서 “엉덩이 무거운 놈이 성공한다. 절박하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 같은 내용을 말한다. 많은 90년대생에게 그의 정신교육은 경전과 다르지 않다. 노력을 많이 한 자가 성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공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손주은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 존 리, 노력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절망

지금에는 존 리(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작년 초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며 자신의 투자 철학을 말했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교육에 불필요한 지출을 하고 있으며, 보다 현명한 투자는 주식이다. 좋은 기업을 골라서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사치를 줄이고 여윳돈을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그가 20대에게 보내는 조언이다. 오롯이 그 때문은 아니겠으나, 20대는 주식시장에 적극 참여했으며 결과적으로 돈을 벌었다. 그의 말은 계속 회자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를 동학개미운동을 이끄는 ‘존봉준’이라고 부른다.

존 리의 주장은 ‘손주은주의’를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손주은의 말을 열렬히 따랐던 90년대생은 이제 열심히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공부해서 성공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믿음은 없다. 공부해서 성공하기도 어려워졌고, 편하게 살기는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산업과 인구 구조의 변화 덕에 대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은 공부해도 일자리 구하기 힘들다. 9급 공무원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운이 좋게 일자리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편한 삶은 더욱 멀다. 집값은 평생 벌어도 사지 못할 정도로 올랐고, 자녀 키우기도 부담이다. 90년대생은 더 이상 노력한다고 해서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존리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무력감과 절망이다.

■ 불평등, 90년대생은 절박하다

그런 절망은 수저론과 함께한다. 자신은 열심히 공부해도 어렵게 사는데, 부모 잘 만난 친구는 노력도 없이 편하게 산다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 구조 자체도 임금 소득이 자산 소득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변치 않는 인생에 결국 중요한 건 돈이다. 그래서 청년은 돈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한다. 일부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과 나태함, 한 몫 정신을 욕하겠지만, 사실 동학개미운동을 포함한 일련의 투자 행태는 절망에서 나온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손주은주의’가 ‘존리주의’로 바뀌는 데는 사회의 고착화된 양극화, 불평등, 수저론적 배경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짚을 수 있다. 왜 그들은 항상 절박해야 하는가. 그들은 학창 시절 때 절박하게 공부했고, 지금은 절박하게 투자하고 있다. 주식은 언젠가 내려간다는 걸 결코 모르지 않는데도, “돈이 복사된다니까” 따위의 최면을 되뇌는 걸까. 국가와 사회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살 거라는 공포가 기저에 있다. 지금은 돈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비루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공포가 있다. 결국 사회의 안전망 부재와 지나친 결과 불평등이 그들을 절박함으로 내몬다. ‘손주은주의’와 ‘존리주의’는 내용은 대척점에 있더라도, 그 배경은 동일하다.

90년대생은 지친다. 지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위험구역으로 향할 수 있다. ‘존리주의’는 위험하다. 코스피 상승세와 맞물려서 다행이었지만, 주식은 항상 오르는 게 아니다. 끝없이 내려갈 수도, 몇 년을 정체할 수도 있다. 돈이 복사되는 건 도박이거나 사기이지, 투자가 아니다. 청년의 영혼을 안전하게 지키고, 고단함을 달래줄 국가의 대책이 필요하다. 1894년 동학 농민은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학살되었음을 기억하라. 당시 조선은 일본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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