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사회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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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사회적 실패
  • 최원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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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최원석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정의당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은 분명 정의당에게 큰 위기다. 김종철 전 대표와 장혜영 의원은 진보 정치 2세대의 대표 주자였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었으나 중대재해법을 시작으로 앞으로 보여줄 활약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일어난 이번 사건은 모든 걸 뒤엎었다. 정의당이 국내에서 대표적인 진보 정당이고 특히 젠더 문제를 앞세웠던 정당인만큼, 이번 사건은 정체성과 존재 명분을 위협한다. 이번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일부의 말마따나 정당의 해산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의당은 이번 사건을 조직적 실패로 규정했다. 심상정 의원은 당을 바닥에서부터 재점검하겠다고 했으며, 배복주 부대표는 지도부 총사퇴를 고려할 만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지 않고 조직 차원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마땅하며 바람직하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 중 하나는 예외라고 생각했던 정의당조차 성범죄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안전한 조직을 만드는 데 실패했기에 정의당은 책임을 지고, 피해자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앞으로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봐야 한다. 정의당의 실패는 이전 사건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번 사건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대표되는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련의 미투 사건은 가해자의 제왕적 권력이 문제였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고,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러한 범죄는 가해자의 책임만큼이나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조직문화 탓이 크다.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 조직적 실패이며, 심지어 피해를 은폐하는 등 조직적 가해였다.

이번 사건의 경우, 그 배경은 권력 구조에 있지 않다. 김종철 전 대표는 원외 당대표였고, 장혜영 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정당 조직 내에서, 사건 직전의 회의에서는 잠시 김 전 대표가 큰 권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시선에서 사회적으로는 장혜영 의원의 권력과 지위가 더 높다. 김 전 대표가 장 의원의 공천권이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성범죄는 발생했고, 국회의원직조차도 여성을 범죄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의 본질은 권력이 아니라 성별 격차이다. 50대 중년 남성이 30대 여성에게 저지른 범죄이다.

정의당은 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류호정 의원은 성평등 수칙, 매뉴얼, 교육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답이 아니었다고 했다. 장혜영 의원은 가해자다움이란 없으며,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종철 전 대표의 도덕적 우월감이 오만함으로 변했을 것이며, 그게 곧 나태함과 안일함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조직 차원에서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사후 정의당의 대처가 그 엄정함을 보여준다면, 엄중한 징계도 답이 되기 어렵다. 아무도 해답을 모르니, 이 실패는 조직 이전에 사회적 실패이다.

장혜영 의원은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이다. 그리고 정의당의 사후 행보는 그들이 이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정의당은 피해자 존중과 회복을 가장 우선으로 삼았다. 가해자를 무관용으로 징계했으며, 적극적으로 2차 가해를 방지하고 있다. 조직적 반성과 해결책도 모색하는 중이다.

사전 방지와 사후 대처는 별개의 문제이다. 일단 정의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이 내부 성범죄에 대처하는 모범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사후 대처 문제를 잘 해결하고 나서, 자신들이 던진 질문을 고민해주길 바란다. 왜 수많은 남성들이 그토록 처참히 실패하는지, 어떻게 그들을 학습시키고 안전한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답하지 못한 이 질문을 고민하는 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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