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한 번쯤 다르게" 미나리, 속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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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한 번쯤 다르게" 미나리, 속하지 않다.
  • 김주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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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김주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미나리. 당신은 이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오리탕 위에 살포시 누운 향긋한 채소가 생각나는가, 아니면 최근 영화제를 휩쓴 다는 영화가 생각나는가? 영화 미나리는 어디서든 상을 잘 받고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채소 미나리도 어디서든 잘 자란다. 이 대사 속 미나리는 척박한 곳에서 역경을 딛고 잘 자란 이민자를 위한 애칭이다. 더 넓게 생각했을 때, 특정 조건이나 배경으로 규정지어져 버린 미나리들이 한국 사회에 많지는 않을까?

우선은 이민자와 비슷하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생각난다. 특히,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온 외국인들은 생김새가 구별돼 그저 외국인으로만 규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호소하는 점이 외국인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10년을 한국에 살고 유창하게 한국말을 해도, 외국인 치고 된장찌개를 잘 먹는다는 말을 듣는 식이다. 여전히 이방인으로 규정되고 마는 것이다. 탈국가적 사회 흐름에 맞춰 국적으로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은 줄여야 하지 않을까?

국적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규정 짓는 것 중 강력한 도구가 나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가령, ‘나이 들었으면 점잖게 ~해야지’ 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이의 규정에서 벗어나 “점잖지 않게” 행동하는 건 어떨까? 백발이 되어서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보자. 혹은 동전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춤추고 노래해보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역동적이고 활기찬 사회가 느껴진다.

국적이나 나이 같은 타고난 지위 말고 사회적 지위가 우리를 규정짓기도 한다. 직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승무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서비스 직업인에게서 친절함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무장하곤 한다, 일터 밖에서도 말이다. 아마 당신이 승무원이었다면, 당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굳이 양보하고 굳이 상냥하게 행동했을 수 있다. 그 사이 당신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일종의 감정 노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는 조금 더 나쁘게 구는 건 어떨까?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당신은 평균이상으로 친절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타고난 지위나 사회적 지위로 규정 당하는 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타인이 무심코 뱉은 말은 나의 귀로 막힘없이 들어와 정체성을 규정 짓곤 한다. 예를 들어, ‘너 원래 착한데 왜 그래?’ 라는 말은 우리를 마치 착하게 행동해야 될 것처럼 유도할 수 있다. 혹은, ‘너 답지 않네’ 라는 말 역시 우리를 조종하려는 은밀한 기제가 작동한다. 항상 되물어야 한다, 혼잣말 일지라도. ‘나 다운게 뭔데?’. 우리를 둘러싼 말과 나의 지위 등에 갇히지 않게 말이다. 우리도 미나리가 돼 보자, 제약 없이 어디서든 향긋하게 쑥쑥 자라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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