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작가] 인생이란 게 대체 뭘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김광규 시인의 짧은 답
상태바
[금주의 작가] 인생이란 게 대체 뭘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김광규 시인의 짧은 답
  • 김다인
  • 승인 2021.02.03 1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한국청년신문] 인생이란 게 대체 뭘까. 삶이란 무엇일까.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오가는 단골 질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춥고 쓸쓸한 겨울이면 더욱 자주 등장한다. 이런 질문은 대체로 축 처진 분위기와 쓰디쓴 소주마저 달달하게 느껴지게 해주는 짙은 씁쓸함을 동반한다. 인생이 대체 뭐길래 다들 삶을 논할 때면 꼭 그렇게 슬픈 눈을 하는 걸까?

2월 첫 주의 작가는 김광규 시인이다. 그의 국내 대표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살아내기 위해서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는 사랑, 삶에서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상실에 관한 시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엔 4.19 혁명 시대의 몰락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젊은 층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시이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자아낸다. 그건 아마 시인이 단순한 시대상만이 아닌 삶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삶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시이다. 어떠한 변화구 없이 화자가 보는 삶의 지점 하나하나를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묘사한다. 말장난과 변화구를 일삼는 다른 일반적인 운문 문학과 가장 대비되는 이 시 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저절로 하나의 장면이 그려질 만큼 선명한 구절이다. 굳이 4.19 혁명 시대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대학가의 입소문을 타는 작은 포차, 오후 내내 교내 동아리에서 현실과 이상에 관한 격렬한 토론을 마치고 온 대학생들이 가볍게 취한 채 연애 이야기,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가?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그러한 술자리만이 갖는 적당한 무게의 공기와 들끓어 오르기 직전의 감정은 수 세대를 걸쳐 있어왔다. 지금은 오로지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 남의 불륜 이야기에 혈안을 올리는 어느 중년들에게도 니체의 말에 감탄해 마지않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18년은 어떤 식으로 사람을 바꾸어놓을까? 왜 혁명을 부르짖고 자유를 사랑하던 이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구속을 원하고 안정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 혁명과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남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만의 온전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따를 용기와 에너지도 있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할만한 깜냥도 있어야 한다.

에너지 넘치고 혈기왕성했던 젊은이들은 18년 동안 무수한 일을 겪는다. 원치 않은 사고를 당하고, 냉대를 받는다.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나 필요했던 여가비, 지저분한 방 정도에나 책임을 질까 말까 했던 그들은 사회로부터 자신을 온전히 책임질 것을, 더 나아가 연로한 부모님과 처자식을 보살필 것을 요구받는다. 잘못된 선택에 고통받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위험을 견딜만한 체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 간다.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금주의 작가 '김광규 시인' (디자인=김다인 문학위원)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새로운 선택이 두려워지게 되고, 살기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삶이란 응당 그런 것이라고, 원래 씁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그들은 삶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고, 한번 발목을 잡은 무력감은 늪과 같아서 붙잡은 이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김광규 시인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교과서에서는 이 시가 소시민적인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이 진정으로 화자의 삶을 지적할 의도였다면 극적으로 변화의 의지를 보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진 화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문장으로 시를 끝맺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문장은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이다. 부끄러운 줄도, 무엇이 잘못된 줄도 알면서도 화자는 그것을 귓전으로 흘려듣고 늪으로 다시 발을 옮긴다. 그건 비단 그가 나약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학습되어버린 무력감 때문일 테다. 그렇다면 그 무력감은 어디서 학습되었을까? 아마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가난, 부족한 재능, 녹이 슬어버린 몸과 같은 개인의 능력을 벗어난 것들로부터 학습되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누구의 잘못도 없다. 다만 삶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다인(시 쓰는 학생들)
▲김다인(시 쓰는 학생들)

모든 삶이 그렇게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삶을 살다가 간다. 4.19혁명 시기에도, 현대에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그렇게 비극적이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늪에서 힘겹게 싸우다가 죽음에 이른다. 그들이 알아채지도 못한 새 사라지고 퇴색되는 것들을 시인은 보았고, 그래서 그는 이를 넌지시 건네듯 말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시를 통해 그동안의 자신의 삶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치열한 자아 성찰의 길로 들어설 수 있고, 누군가는 삶의 씁쓸함에 공감하여 눈물 흘리며 그로부터 치유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잊은 줄 알았던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를 보여주는 이 시는 마음속 한 곳에 깊은 울림을 자아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