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shirkers,2018)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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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shirkers,2018) 를 보고
  • 배은정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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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친취향' 서점 에서 잡지와 영화 감상 (사진=배은정 칼럼니스트)
▲'치우친취향' 서점 에서 잡지와 영화 감상 (사진=배은정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회사에서 일하다 문득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인스타그램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가 사는 동네의 책방에서 ‘잡지와 영화’라는 이름으로 씨네 페미니즘 매거진4- 흐르는 아시아 하루는 책 이야기를 하고, 하루는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중 하나를 함께 관람한다고 해서 냉큼 신청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마감이 되었을까 떨렸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어 함께 할 수 있었다. 책을 먼저 읽어보는 시간은 취소가 되었고 토요일 저녁에 책방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관이 아닌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책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프로젝터를 켜놓고, 유리창으로 보이는 밤하늘과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들이 그곳에 있는 나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영화에 바로 집중하는 것은 어려웠다. 낯선 공간, 낯선 장소,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무슨 이야기를 할지 파악해야 하는 긴장감이 들었다. 영화에 깔리는 ost는 영화 전반에 걸쳐 묘한 느낌을 준다. 여성의 낮은 허밍으로 울려 퍼지는 평이한 목소리, 아아_ 아아_ 아아. 무슨 이야기가 영화에 나올까 기다려지면서도 내용이 처음에는 파악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비평을 보지 않고 책 제목만 대충 보고 가서 영화 제목이 셔커스가 아니라 서커스라고 생각을 했다. 막연히 다큐멘터리라길래 서커스를 하는 집단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내용인가 했는데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1992년, 십 대 소녀 샌디 탄은 친구들과 싱가포르 거리에서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필름이 사라진다. 어디로, 왜? 잃어버린 필름과 기억을 찾는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라고 네이버 영화에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출한 문장으로 소개되기엔 영화 안에서 그들의 젊음과 영화를 찍는 광기 어린 열정, 그리고 그것을 빼앗아간 조지에 대한 의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게 만든다. 샌디는 조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감독은 셔커스 음악을 만들어서 테이프를 조지에게 전달했는데 테이프는 오로지 하나였고, 조지는 테이프마저도 훔쳐서 달아났다. 음악 감독은 샌디의 친구였는데 샌디에게 20년 동안을 그 얘기를 했다. 샌디는 그럼 그냥 나를 위해 연주해달라고 말하고 셔커스의 영상 위에 친구가 연주하는 곡이 깔리지만,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젊음을 바쳐 만든 영화, 그들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있던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때 느꼈던 상실감과 상처는 무척이나 큰 것이었으리라.

▲배은정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배은정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제야 흐르는 아시아 잡지를 읽었다. 잡지 안에는 여성이 만들어내는 영화 이야기가 가득했다. 기성 영화를 떠올려보면 남성 감독이 만든 상업영화들이 먼저 떠오른다. 봉준호의 기생충, 박찬욱의 올드보이 등등 이 잡지에서는 중국, 필리핀, 싱가폴 출신 감독들이 아시아의 여성의 삶을 담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고희영 감독이 제작한 불숨과 물숨이란 영화를 가장 보고 싶었다. 도공은 원래 불을 아들에게만 물려준다는 말을 듣고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명확한 곳이 있는구나 생각하게 한다. 예전에는 그릇을 만들려고 불을 땔 때 여자는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해녀들을 보기도 하고 해녀 박물관에 갔을 때 신기하고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여성의 이름으로 기억된 역사는 기억해서 기록하지 않으면 지워지기 쉽다. 이 잡지를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여성 감독들의 이름,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들이 이야기해 왔던 여성들의 문제들은 묵묵히 기록되고 있었구나 싶었다. 셔커스를 접할 때 영화로 시작의 문을 열었지만, 이 잡지를 읽으면서 영화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완성되었다. 영화 잡지에 적혀있던,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 봤자 더 오랜 기다림과 좌절만 돌아올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란 말이 크고 무거운 하나의 발자국처럼 내게 다가온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행한 사건에만 최근에는 주목하고 분노했었다. 영화를 통해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연대할 수 있음을 느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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