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어둠 속 희망이라는 빛
상태바
[청년아고라] 어둠 속 희망이라는 빛
  • 홍수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10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다는 말이 있다. 빛을 만드는 건 어둠이다. 기쁨은 슬픔이 만들고 성취는 좌절이 만든다. 마찬가지로 온기를 온기일 수 있게 만드는 건 한기 그 자체다. 추운 남극에 사는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 추위를 이겨낸다. 겨울은 사계절 중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이 추위의 몫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생명의 기운이 잠적해 버린 자연을 살갗을 에는 바람만이 가를 때 사람들은 함께 추위를 견뎌내자고 손 내민다. 각자도생이 아닌 공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담합이 겨울을 무엇보다 따뜻한 계절로 만든다. 그래서 겨울은 생명이 꺼져가는 황량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훈훈한 이미지를 자아낸다. '따뜻한 겨울'은 역설법이 아니다. 겨울에는 어둠도 있고 빛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전의 양면을 한 번에 보지 못한다.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면을 보면 숫자가 쓰여 있는 면이 가려지고 숫자가 쓰여 있는 면을 보면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면이 가려진다. 어둠이 없으면 빛도 없다지만 상반된 특성이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 올해의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기는커녕 황량하고 쓸쓸한 계절로만 기억될지 모른다. 상황의 특수함이 누군가에게 고립을, 누군가에게는 가난을, 누군가에게는 우울증을 가져다준 겨울을 데리고 왔다. 결국 겨울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정으로 견뎌낼 것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재산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차라리 백석 시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겨울과 흡사하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속 화자는 추운 겨울 아내와 부모,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거나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누워 있는 화자의 머릿속에는 슬픔이며 어리석음이 스치운다. 그리고 화자는 곧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고립된 자의 겨울에는 어둠만 있다.

반면 뤼미에르 형제가 1896년에 기록한 영상 <눈싸움 (Snowball Fight)>에서 묘사된 겨울 풍경은 크리스마스나 구세군, 연탄 나눔 봉사처럼 겨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영상 속 남녀들은 눈싸움을 즐기고 있다. 무채색을 띠는 사람들의 옷에 골고루 묻어있는 하얀 눈들은 그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이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화면 멀리서는 눈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 서 있다. 몇 초 뒤 자전거를 탄 남자가 눈싸움 삼매경인 무리 틈을 지나간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눈을 맞고 넘어지더니 이윽고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가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바쁘다. 뤼미에르 형제의 <눈싸움 (Snowball Fight)>에는 삶의 정다움과 즐거움이 녹아있다. 그것은 100년 전에도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뤼미에르 형제들이 기록한 1896년 겨울의 한순간만은 완연한 빛이었다.

우리는 이제 현재가 과거보다 낫고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겨울은 뤼미에르 형제가 기록한 100년 전 사람들의 겨울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악한 것들이 판도라의 항아리 속에서 빠져나간 자리에 희망만이 남은 이래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게 되었다는 옛 전설처럼 어둠만이 자리한 터널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더 나은 미래를 소원하는 일이다. 때로 희망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로 여겨질 때가 있다. 이카로스가 너무 높게 하늘로 올라간 탓에 추락해버린 것처럼 희망으로 고양된 마음은 더 큰 실망으로 실추될 것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희망은 모든 일에 우선하여 당장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의지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가 삶을 포기하려다가도 굳고 정하다는 갈매나무를 떠올리며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짐하게 만든 그 힘은 바로 희망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갈매나무는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되는 삶의 양면성일 테다. 삶에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다. 성취가 있고 좌절이 있다. 유대가 있고 고독이 있다. 그것들 중 어느 한 속성이 삶을 영원토록 지배하지는 않는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나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삶의 빛과 어둠은 끈임없이 명멸한다. 희망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은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본다. 괴로움을 마주 보고 시인하면서 다음 앞면에 도래할 기쁨을 아는 희망은 깊은 깨달음이다. 어둠이 길었던 만큼 우리가 미래에 맞이하게 될 빛이 더욱 환하고 따스하길 희망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