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평] 좌절과 그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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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평] 좌절과 그 이후의 삶
  • 이주영
  • 승인 2021.0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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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작가, 〈낮은음에서 엄마를 봤다〉 (디자인=이주영)
▲김기범 작가, 〈낮은음에서 엄마를 봤다〉 (디자인=이주영)

[한국청년신문] 주변의 수군거림, 누군가의 언어로 우리는 종종 상처받는다.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고 물리적인 힘과 위계를 이용해 신체적인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읽어볼 시 「낮은음에서 엄마를 봤다」에는 폭력의 피해자인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시를 살펴보자.

1연에서 화자는 군중에 의해 ‘미친 인간’으로 규정된다. 화자는 주변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된 존재로 불안을 겪는다. 어딘가 의지하려고 하지만 화자의 “교실”에 의지할 공간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화자가 “10초”를 세고 있는 상황이 눈길을 끈다. 그리스어로 숫자 10은 깨달음과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이면서도 부모와 자녀를 모두 아우르는 가족 전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10초”를 세는 행위는 완전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화자의 시도는 성공하는가? 시를 계속해서 읽어보자.

화자가 “10초”를 세고 나서 보이는 교실은 “빼곡한 숲”으로 자신의 마음을 둘 수 없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화장실 네 번째 칸”으로 향해 숨겨놓은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놓는다. 그런 화자는 “똥사개”로 전락해버리며 “졸업식” 날에도 화자의 상황에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곧, 화자의 완전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는 좌절된다.

3~5연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1~2연이 “교실”에서 완전함―화자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것, 상황에서 어떤 구원을 희구하는 행위―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3~5연은 “음대”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완전함을 추구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화자가 처한 시공간은 바뀌었지만, 화자의 본질적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4~5연에서 화자가 “엄마”를 찾고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길을 탐색하려 하지만 이 또한 실패하는 것은―곧,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고 군중으로서 존재하는 모습은―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에 머물러 있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화자의 진술은 대부분 과거 시제로 표현되고 있다. 곧, 화자의 현재 상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화자가 추구하는 완전함이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에는 더는 진행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화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있고, 그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시를 다 읽다 보면, 화자의 나아감이 궁금해진다. 이것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주영(시 쓰는 학생들)
▲이주영(시 쓰는 학생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인간의 완전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욕망과 계속되는 좌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은 인간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청년 세대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주변의 질타나 시선으로 인해 대상화된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 그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어떤 상황 혹은 대상을 희구하지만, 끝끝내 이것을 추구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그렇기에 상황은 바뀌어도 여전히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의 진전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시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라 답해야 할까? 그 고민의 지점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질문을 입안에 담고 중얼거려 보자. 답은 쉬이 나오지 않겠지만, 고민의 시작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지평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같이 고민을 중얼거려 보자고 감히 당신에게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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