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고라] 오멜라스를 떠난 뒤에 기대할 수 있는 세상
상태바
[청년 아고라] 오멜라스를 떠난 뒤에 기대할 수 있는 세상
  • 홍수빈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2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 홍수빈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는 가상의 도시가 등장한다. 유토피아처럼 환상적인 이 도시의 이름은 오멜라스다. 오멜라스에는 걱정도 근심도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은 일생을 평안 속에서 살아간다. 이토록 안락하고 평화로운 도시에는 한 지하실이 있다. 그 지하실은 어둡고 축축한 곳이다. 지하실 속에는 어린아이가 갇혀있다. 이 아이는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하며 영양실조에 걸려있지만 아무도 아이를 구출해내지 않는다. 오멜라스 도시 전체의 행복이 이 아이의 불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멜라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게 된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한다. 슬퍼하는 사람도 있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오멜라스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사람도 있다. 불의를 참지 못한 사람들은 오멜라스를 떠나기도 한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규정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 언뜻 생각하기에 낙원 같지만 공리주의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행복이란 추상적 개념은 각자의 삶에서 다르게 규정된다. 그러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원칙에 입각한 공리주의에서 행복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한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때 다수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모습의 행복은 탈락된다. 따라서 공리주의를 철저히 따르는 세상은 소수자를 제한 다수만을 위한 유토피아가 된다. 오멜라스 도시처럼 다수의 행복을 위해 한 명이 모든 불행을 떠안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월 10일 지하철 4호선에서 장애인 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2015년서울시는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모든 역사 안 승강기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 전체 역사 중 23개 역사에는 승강기가 없다. 또한 승강기 설치와 관련된 예산도 올해 서울시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체는 역사 내 승강기 설치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저상버스, 마을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을 촉구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단체의 시위도 민주 사회에서 보호 받아야 할 목소리다. 그런데 이번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곱지 않은 눈길이 섞여있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가 휠체어를 타고 역에서 승하차를 반복하는 바람에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SNS에서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옹호하는 입장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나뉘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삶의 최전선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입은 불편과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흔하다. 이들은 장애인 단체의 시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권리 주장에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보려 하기보다 사회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혀를 차기 일쑤다. 소수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운동은 사회에 파문을 그릴 수밖에 없다. 평등을 추구하는 일 자체가 다수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구성된 제도와 환경, 인식을 고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정인에게만 유리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그 권리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채 불평등하게 취득된 권리였다.

우리는 약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생산된 시스템을 편리한 시스템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익숙한 시스템에 차질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균열에서 평등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입은 피해를 생각하며 타인을 배척하게 된다. 우리가 지하철 운행 지연 때문에 느낀 불편은 일시적인 불편일 뿐이다.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불편함을 일상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자들에게 남한테 피해 끼치지 말고 얌전히 살아가라는 말은 오멜라스의 지하실에 갇힌 아이를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다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가 소수자의 권리를 빼앗아 운영되는 불의한 사회라는 걸 보여준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회를 진단하는 소설은 영생을 살아 두고두고 귀감이 된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멜라스에서의 행복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큰 교훈을 준다. 우리가 지하실에 갇힌 사람에게 직접적인 구원을 행사할 수 없다면 적어도 불행한 사람을 방치하고 외면하는 환경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이권이 타인의 이권을 빼앗아 얻은 것임을 아는 순간 불의를 참지 않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사회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