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평] 별 볼일 없는 삶의 흔적을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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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평] 별 볼일 없는 삶의 흔적을 사랑하기
  • 이주영
  • 승인 2021.03.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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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다윤 작가, 〈흔적〉 (디자인=이주영)
▲곽다윤 작가, 〈흔적〉 (디자인=이주영)

[한국청년신문]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글자를 쓰고 남긴다. 글자를 배우고 단어들을 직조하여 문장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문장으로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살아나간다. 오늘 읽어볼 시 「흔적」은 글자가 남기는 흔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이다. 언어에 관해 생각해보고, 언어를 통해 구성되는 삶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시를 천천히 읽어보자.
1연에서 화자는 “글자가 남기는 부스러기들”이 좋다고 말한다. 그것은 “고요한 문장의 숨소리”이면서도 어떤 “중얼거림”이다. 누군가에게 글자로 만들어진 문장들은 “외로움”일 수도 있고 “잊혀지기 싫은” 욕망의 집합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살면서 사용하는 글자들은 시공간 위에서 떠돌아다닌다.

그렇기에 우리의 언어들―글자로 이루어진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은 시공간을 떠돌아다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변화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언어 중 어떤 것들은 살아남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화자는 지나가 버리는 언어들을 “마음 한 켠”에 묻어두거나 “시시한 문장”을 노트에 적어둔다.

그런데 이러한 화자의 모습을 “흑색의 발자국”을 남기는 존재라고 보며 “하자 있는 아이”라고 지칭하는 이가 있다. 그 아이는 화자와 동일시되는 존재로 “자꾸만 하찮은 이야기들을” 흘리는 존재이다.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으며 끝내 놓치지 못하는 존재. 설령 놓치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기억하거나 적어두는 방식을 선택하는 화자의 모습은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혹자는 무언가에 매달려 있고 정지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하자”가 있는 사람처럼 화자를 보는 것이다.

▲이주영(시 쓰는 학생들)
▲이주영(시 쓰는 학생들)

그러나 화자는 말한다. “별 볼일 없는 삶을 사랑한다”고. 이러한 발화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끝내 털어내지 못하더라고 기억하는 일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힌다. 혹자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도 엿보이는 듯하다. 

이따금 삶에서 특수한 개별자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무시당한다. 화자의 존재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삶도 보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삶인 것만 같고, 무언가 고쳐야 할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 화자처럼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나는 내 방식의 삶을 살아내겠다고 말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아내게 하는 방식이라면 나의 방식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그리하여 주변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가 비록 보편의 세계에 가닿지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삶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화자의 다짐이 들려온다. 이제는 우리가 화자에게 대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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