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평] 좋은 ‘날’, 칼‘날’에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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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평] 좋은 ‘날’, 칼‘날’에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고 싶다면?
  • 최다원
  • 승인 2021.04.06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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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작가, <너가 휘두른 칼'날>

[한국청년신문] 대학교 1학년, 교내동아리에서 정말 어이없게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푹 빠진 적이 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당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배려해주고, 헤어질 땐 “안녕. 다음에 봐!”라며 살갑게 대해준 사람. 그의 사소한 말투나 행동 모든 것에 의미부여를 하며 ‘걔도 나한테 마음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은 “네가 착각하는 거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네가 마음에 들었으면 벌써 너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겠지.”라며 나를 말렸지만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친구들 말처럼 혼자 김칫국 마시고 삽질한 셈인데 그 당시 나는 오랜 여초 생활 때문에 연애가 고파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드라마에서만 보던 ‘대학교 핑크빛 로맨스물’이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렇게 그와 아무런 진전조차 없이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중간고사로 인해 만남이 뜸했던 동아리 부원들은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간단한 술자리를 갖겠다고 우리에게 공지를 했다. 그 아이와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일까. 평소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왠지 그 날은 꼭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나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할뿐더러 조금도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보여서 섭섭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말에 모든 것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짝사랑도, 그와의 인연도 그리고 동아리 활동도 모두 끝이 났다. 이런 식으로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어봤자 나에게 실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난 일이지만, 난생 처음 해본 짝사랑이라 그런지 그때 굴욕적이고 허무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 시를 처음 보고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날도 날씨가 참 좋았는데.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하늘에 뜬 달도 평소보다 유달리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아마 시 속의 화자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겠지?’ 라는 생각으로 시를 읽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3연의 ‘잘라낸다’와 4연의 ‘상처가 깊다’라는 어두운 의미를 통해 그 날은 ‘칼날’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시의 화자는 ‘좋은 날(1~2연의 의미)에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였으나 상대방이 잘라내는 칼(3~4연의 의미)같은 거절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시의 제목과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결과적으로 화자는 상대방과 연인이 되지 못했으므로 단순히 ‘날씨’라는 의미보다는 칼‘날’에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최다원 시쓰는학생들
▲ 최다원(시쓰는학생들)

이처럼 좋은 날 기대와 달리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평소보다 더 큰 실망을 하게 된다. 상대방을 향한 실망감, 서운함도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면 괜한 열등감과 자격지심 때문에 혼자 마음속으로 ‘너희도 곧 헤어지겠네.’라며 악담을 퍼붓거나 그들을 몰래 한 번 째려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감정 회피일 뿐,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 라는 단순한 바람에서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지?’ 라는 식의 자기비하에 수십 번도 더 빠졌다. 결국 그런 감정이 나를 삼켜 한동안 폭식증, 우울증에 마음고생을 했다. 그걸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해 성적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도 살다보면 한 번쯤은 겪게 될 테고 이 또한 시간 지나고 보면 어리숙한 모습이 마냥 풋풋해보일 텐데, 그때 나는 스스로를 왜 그렇게 미워하고 부끄러워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움츠러들지 말고 좀 더 당당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자신감을 되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물론 그런 어리숙한 내 모습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거겠지만. 그렇다면 현재 사랑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 사람을 잠시 잊고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 입고 밖을 나가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감상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먹으면서 절망으로 가득한 감정을 잠시나마 내려놓길 바란다. 그렇게 내 감정을 스스로 가꾸다보면 칼‘날’에 찍힌 상처도 아물고,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그와 좋은 ‘날’을 만끽할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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