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고라] 큰 배움터의 본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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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고라] 큰 배움터의 본질에 관하여
  • 송민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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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경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 송민경 한국청년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청년신문] 중간고사 기간이 돌아왔다. 중간고사는 벚꽃의 꽃말이라고 하는데, 올해는 녹음이 우거지고 나서야 학생들이 삼삼오오 새벽불을 키게 되었다. 어쨌든 400만원에서 시작하는 학비를 냈고, 어쨌든 학점을 받아 졸업을 해야하고, 어쨌든 취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노트북을 키고 공책을 펼치고 글을 읽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긴 밤을 다해 시험을 준비하는걸까?

대학의 순 우리말은 큰 배움터이다. 말그대로 큰 학문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온 학교는 모든 종류의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공간이었고, 그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간혹 정치 싸움의 본거지로 변질되거나 교권이 인권을 이기는 일들도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해온 학교의 본질은 지식의 전달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시간들을 대학에 가기 위해 쏟아부은 뒤에, 드디어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이 배움터의 본질이 어딘가 왜곡되었을지 모른다는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배움은 얕고, 가르침의 기간은 짧고, 학습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루했다. 한달에 백만원씩 쓰고 있는 격이지만 이것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의문에 대한 정답은 뜻밖에도 교수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대학은 학점을 돈받고 파는 곳이라는 정답. 그때에서야 대학의 시스템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동시에 뭔가 대단한걸 배워가리라는 어렴풋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수가 이 시스템에 동의하며 학교를 다니고,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납득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고학력자를 요구하는 취업시장에서 대학생들은 선택을 기다려야하는 을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화와 기본학습권보장을 위해 초중등과정이 필수로 존재하지만, 대학은 오로지 선택의 길이다. 학생들이 지불하는 비용의 대가가 단순히 졸업장 뿐이라면 이는 대학의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대학은 사업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수강인원에 학생들은 더 많은 학기를 수강해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 끊임없이 학비를 지불해야 한다. 원하는 교수자를 선택할 권한도 줄어들고 있다. 학교 측의 부당한 결정이 있더라도 학생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육기관으로도 학생에게 정당한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고, 오늘날의 실태에 따라 사업기관으로 볼 때도 비용을 소비자에게 정당한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줘야 한다는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이 대학에 오기로 선택할 때는 단순히 비용만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4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을 한 곳에 투자하기로 마음먹는 것이고, 이를 위해 12년간 의자에 앉아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고, 수많은 기회비용을 저버릴 각오를 하는 것이다. 여전히 학생들의 책상에는 불이 켜져있고 시린 눈을 눌러가며 책을 넘기고 있다. 학생들의 노력을 받은 대가로 학교는 졸업장보다는 더 중요한 뭔가를 보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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